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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아..사람아.

김동리.

 

동리목월 문학관 본관..왼쪽이 김동리관, 오른쪽이 박목월관이다.

 

 

 

 

육필 노트

 

 

한편의 글을 출산하기 위하여 얼만큼의 애를 태웠을지..

 

 

김동리선생 방 내부모습

 

 

무녀도 모형으로 설명하고..무당집 모화네에 욱이가 나타나면서 사건이 전개되고.

 

 

무녀도 내용도 설명되어 있다.

 

 

 선생이 남기신 시 패랭이 꽃.

 

1913년 11월 13일 (음력) 경상북도 경주에서

5남매(3남2녀)의 막내로 아명은 창봉(昌鳳)이라 하고

호적상의 이름은 창귀(昌貴)였으며 본명은 시종(始鐘)이다.

 

동리의 아버지 김임수는 시장에서 과일장사를 했는데 술이 과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40대 중반 이후로 접어들면서부터는 술로 세월을 보내기 시작하여

주사가 무척 심하였다.

그러자 견디지 못한 동리의 어머니가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고

이로 인해 자주 다툼이 일어나 동리 어머니는 옆집으로 피신해 간 적이 많았다고 한다.

이렇듯 동리는 어머니의 입교와 아버지의 술주정에서 비롯된

잦은 분란과 무관심으로 점철된 어두운 가정환경 속에서 자라야 했다.

 

동리의 유년시절에서 상기해야할 것은 ‘죽음’의 체험이다.

그는 4살 때 소꿉친구인 선이가 폐렴으로 죽었고

8살 때 그가 따르던 고종사촌 남순 누나가

13세의 나이에 알 수 없는 병으로 죽었다.

이 둘의 죽음은 어린 나이의 동리에게 죽음의 문제를 그의 인생에서 극복해야할

하나의 테제로 만들었고 이는 훗날 작가 자신이 “내 문학의 동기가 선이의 죽음에 있다라는 말을

많은 곳에서 언급함에서도 알 수 있다.

이렇듯 그의 유년시절은 어둡고 쓸쓸하며 외롭기만 하였다.

 

김동리가 태어나고 자란 성건리(성건동)에는 아직도 골목골목 어렵게 살아가는 우리네 이웃이 있고
무녀도의 마지막 무대가 된 애기청소 퍼런 물은 이 겨울 몇 번을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한다,
넘쳐나는 물질문명 속에 급변하는 정보화 시대를 살고 있다 보니
자칫 잃기 쉬운 인간애를 문학관에 가서

천천히 흐르는 세월의 기류를 만나는 일도 의미 있으리라 여겨진다.


조금만 늦게 호흡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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