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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

타작하던 날

 

 

 

 

 

강아지풀 몸 가누기 힘들게 열린 안개 방울들.

 

 

논에 누운 벼들

탈곡을 기다리며

 

 

아버지 경운기를 타고 귀가하는 시간 탈~탈~탈~~

 

 

병풍처럼 둘러 싼 저 서산은 "오봉산"

 

 

고요하다
저 넓은 들이 깊은 잠에 든 듯 고요한 새벽
우윳빛 안개에 멱감고 물기도 마르지 않은 억새가 선녀처럼 신비롭게 다가선다.
큰 숨 쉬면 조롱조롱 열린 안개 방울이 떨어질까 나름대로 조신하게 다가간다.

 

부모님 1년 땀방울 쓸어 담는 날
이른 새벽부터 논에 가신 부모님 찾아 한 치 앞도 분간이 안 되는 들로 나섰다.
얼마나 헤매고 있었을까? 꿈속의 길을 걷듯 논길을 걸어간 시간은
저 멀리 어렴풋하게 들려오는 탈곡기 소리
그곳에 내 부모님 안개같이 계셨다.

 

반가움도 잠시
본격적인 일이 시작되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황금알이 쌓이고,
빈 볏단이 높아 갈 때쯤
안개 사라진 하늘은 청명한 가을빛
아름다움을 맘껏 뽐내고 들어서 먹는 새참의 버거운맛과
아버지랑 나눈 막걸리가 알싸하게 좋았던 시간들.

해가 서산에 넘어서는 시간
타작을 마치고 아버지 경운기를 타고 돌아오는 길
탈~탈~ 기분 끝내주게 좋았네.

 

차 한잔 마주하고 앉은 아버지
"내년에도 저 들에서 타작을 할수있을지.." 하시는데
가슴이 퍽 막히더라.
지나온 굴곡진 세월과 평생을 땅과 벗하며 지낸 시간이
회한으로 다가오는 가 보다.
내 부모가 어느새 땅으로 돌아갈 시간이 다가옴에
자식은 가슴에 강한 통증을 느꼈다.

 

퇴색되는 계절처럼 자꾸만 낡아지는 부모님.
잔잔한 새벽 안개에 싸인 억새 같았다.

 




피아졸라(Astor Piazzolla)의 탱고 명곡 Oblivion(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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